환경생태계획 및 설계 EEPD/프라이브르크 검은숲(Schwarzwald)

독일 프라이브루크(Freiburg)의 검은숲를 가다.

Do! and Aha! 2013. 11. 9. 08:22

 

 

'검은 숲'은 독일어로는 슈발츠발트 Schwarzwald, 영어로는 Black Forest, 한자로는 흑림(黑林) 이라고도 한다. 프라이브르크 '검은 숲'은 임업을 하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아는 유명한 숲이라고 한다. 8년 전 정종일 사장과 독일 생태복원지를 답사할 때 시간이 너무 부족하여 포기하였던 곳이어서 독일 남부 답사 일번지로 꼽았던 곳이다.
'검은 숲'이란 전나무와 가문비 등의 침엽수림이 너무 짙어서 햇빛이 숲 내부로 투광되지 않는데서 유래하여 '검은 숲' 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검은 숲이란 로마인들이 독일을 점령하려고 전쟁할 때 로마인들이 이 지역에 들어섰을 때 나무가 울창하여 어둡고 침침하기 때문에 silva nigra라고 말해 이 라틴어가 독일어로 Schwarzwald 되었다고 한다(배상원, 국립산림과학원)

 

그런데 프라이브르크 주변의 검은 숲에 도착하여 먼 곳에서 보니 검은 숲이 아니라 우리 한국 산의 조림지 어느 곳에서라도 볼 수 있는 침엽수와 활엽수가 혼효된 것이었다. 한국에 아직 까지 소개된 것으로 보면 침엽수가 꽉 들어찬 '검은숲'이어야 하는데 이틀 동안 빗 속에서 본 프라이브르크 주변의 검은숲은 도저히 검은숲이라고 보기가 어려웠다. 
 

프라이브루크 시가지에서 본 검은숲- 침엽수와 낙엽수가 겹겹이 혼효되어 있다.


 이것이 나를 미치게 한 것이다. 기어코 검은숲을 보고 가야겠다고 생각하였기에 비가 오더라도 산을 올라가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걸어서 가면 독일 남쪽의 쥐라산맥에서 부터 서쪽으로 길이 2백Km, 폭 60Km의 거대한 산림을 많이 볼 수 없기 때문에 더 많이 볼 욕심으로 호스텔에서 자전거를 빌렸다. 호스텔 주인이 '어렵지 않겠느냐'는 말에 약간 위축이 되기도 하였지만 '칼을 뽑았으면 무우라도 잘라야지'라는 생각으로 일단 출발하기로 하였다.
자전거는 산악용이라고 해도 기어가 고장나서 계속 언덕을 올라가는데 여간이나 힘든 것이 아니었다. 그동안 유럽에서 어쩔수 없이 배 채우기식으로 먹은 샌드위치 때문인가도 생각되었다. 이럴 때 우리 한국식 매우 고추와 된장을 먹었다면 좀 더 힘을 낼 수 있을텐데라는 아쉬움도 있다. 빗물과 콧물이 섞여 괴롭히기도 한다.

 

 

해발고 473m에서 1,220m 까지 연결된 케이블카 스테이션(Schauinslandbahn)

 


해발고 473m 정도 올라가니 케이블카가 보인다. 케이블카가 나를 유혹한다. 환경과 경관을 훼손한다는 케이블카를 타고 편하게 올라갈 것인가 아니면 이 빗속에 고행을 계속하여야 하는가? 역시 나는 인간이었다. 편리함을 추구하는 평이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나는 철저한 환경생태론자도 아니고, 고행을 하는 수도승도 아닌 것을 확인해야만 했다.
케이블카는 참 편안했다. 비바람으로 부터 춥지도 않았고, 허벅지나 엉덩이가 불나게 아프지도 않았다. 케이블카가 바람에 좌우로 흔들릴 때마다 안전사고 나면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안전사고 나면 끝장이다. 모든 것이 끝장인 것이다. 그동안 내가 쌓아온 것들과 수집한 자료들도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지는 것이다. 허무한 마음이 자주 든다. 애라 모르겠다. 케이블카 줄이 떨어질 때 떨어지드래도 이제 케이블카를 돌려 내려갈 수도 없지 않는가?
이리 저리 흔들리는 케이블카에 안개낀 창을 닦아가면서 사진을 찍지만 빗방울 때문에 거의 허탕이다. 그래도 흔적이라도 있어야 기억을 더듬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뚜덕 뚜덕 찍어 댔다. 옆에 카메라 전문가가 있었다면 나더러 무식한 놈이라고 하였을 것 같다.

 

 

빗방울 때문에 사진을 찍을 수 없어 케이블카 조그만 환기구 창을 통해 찍은 검은숲 중부능선의 식생-역시 침엽수와 낙엽수 혼효림으로 생존 경쟁이 치열하다. 


그렇게 12분 동안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보니 산 아래 보다 비바람이 더 거세고, 안개가 매우 짙어서 5m 전방을 보기가 어렵다. 때때로 바람에 안개가 겉이면 숲이 조금이라도 보인다. 숲 경관은 너무 싱거웠다. 해발고 1,220m 정도 되는 검은 숲이 산 아래에서 본 경관과 비슷하다. 숲 위쪽으로 올라가면 뭔가 다르겠지라고 생각하며 샤유인스란트(Schauinsland, 해발고 1,284m)를 향하여 올라 갔다.
짙은 안개 속에서 비바람 몰아 치는데 혼자서 해발고 1,284m를 가다니 미친 짓이다! 비와 짙은 안개가 앞을 가린다. 숲이 우거진 곳에서는 늑대라도 나올 것 같다. 그래도 등산로 폭이 넓어 늑대는 안나오겠지 하면서 걸었다.

 

 

검은숲 해발고 1,220m에 비바람과 짙은 안개가 끼어 앞을 보기가 어려웠다.


나는 여기에서 무엇을 볼 것인가를 되뇌이었다. 보이지 않는 숲을 보고 무엇을 볼 것인가?
도(道)를 닦기로 했다. 그런데 도저히 도를 닦을 수 없었다. 집중이 안되었다. 안개 속에 간간히 보이는 침엽수와 낙엽수가 전쟁을 하고 있는 모습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사방에서 총소리와 폭탄이 터지는 것 같았다. 침엽수인 전나무와 가문비나무 등과 너도밤나무인 낙엽수가 전쟁을 하고 있는 모습이 자주 눈에 들어 왔다.

 

 

낙엽활엽수(너도밤나무) 숲 속에 게릴라형으로 침입하여 종자번식 된 침엽수들(전나무, 가문비나무 등)


너도밤나무는 주로 암석지에 분포하여 있는데 너도밤나무 속에 침입자가 있었다. 키가 큰 전나무와 가문비나무가 너도밤나무 속으로 파고 들어와 크게 성장하여 너도 밤나무가 못 살게 괴롭히고 있었다. 너도밤나무 숲이 빽빽한 곳에서는 침입종인 전나무나 가문비나무가 비리비리하게 생장이 약하여 잘 살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다. 반면, 숲틈이 많은 너도밤나무 숲에서는 여지 없이 어린 전나무나 가문비나무가 떼거지로 성장하고 있었고, 고속 성장을 한 나무는 너도밤나무를 못 살게 괴롭히고 있었다. 나는 너도밤나무에게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는 이승만 전대통령의 말씀을 전해 주고 싶었다.

 

 

 

                            낙엽활엽수와 침엽수의 전쟁                    

                            낙엽활엽수 세력이 약한 곳에 침엽수가 속성하여 낙엽활엽수를 피압하고 있다.


로마인들이 독일을 점령할 시기인 천년 전에 침엽수림이 검은숲을 이루고 있었다면 너도밤나무가 침입종인지 의문이다. 그런데 나는 이날 너도밤나무 편에 있었다. 생태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의당히 검은숲의 자생종, 토착종, 침입종, 귀화종 그리고 그들의 경쟁과 공생에 대하여 공부를 하고 왔어야 하였지만 독일어를 모르는 것과 학문의 끝없는 깊이에 대하여 내 반성만 많이 할 뿐이었다.
결국 나는 비바람과 칡흙 같은 안개 속에서 검은숲의 극히 일부분만 보고 왔다. 꼬끼리 비듬 하나 보고 꼬끼리를 다보았다는 식으로 허풍만 느는 것이 아닌지 조심스레 반성해 본다. 언제 다시 길이 2백Km, 폭 60Km의 검은 숲을 가볼까? 아쉬움만 남긴 채 기차 안에서 어둠을 달랜다.

2013년 11월 6일